옴스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가고, 100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도시이다. 우리가 잘 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1849년부터 1853년까지 이곳에서 복역했다는 사실도 우리에겐 새로울 뿐이다.
1719년 이르띄쉬 강과 오뜨 강이 만나는 지점에 코사크 부대의 목조 요새에서 지금의 옴스크가 시작되었지만, 19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범죄자들을 유배시키는 시베리아의 한 도시에 불과했다. 1890년대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건설되면서 상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제정말기에는 깔차크 장군이 이끄는 백군의 주둔지로서 1917년 이후에도 볼셰비키 군대와 여러 번 충돌하여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곳에 건설된 각종 군수 공장은 옴스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고, 지금은 시베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어있다
도시 개발 당신의 흥미로운 흑백사진들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사본, 아포리즘 원본을 모아둔 곳이다. 무성의하게 널브러진 공장 터와 허름한 병무청(붉은 벽돌 건물, 예까쩨리나 여제 시대의 유치장)을 지나면 박물관 간판이 보인다. 도스토예프스끼가 비참한 수감생활을 버텨내고 연재했던 <죽음의 집의 기록과 <학대 받은 사람들>에는 과거 코사크 기병대의 요새에서 출발한 이곳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다. 호텔 악짜브랴에서 500m 거리. 박물관 근처에는 드제르진스끼 문화 궁전과 군인회관이 있다.
울리짜 초하나 발리하노바에 목조건물이 모여 있는데, 단순한 목조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꼰드라찌 벨로프라는 유명한 예술가의 집이었으며, 지금도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음악회, 문화의 밤, 미술 전시회 등이 열리곤 한다.
레닌 거리를 따라서 오트 강을 건너가면 옴스크의 상징인 소성당에 닿을 수 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의 탄생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성당으로서 그 사연 때문에 19월 혁명 뒤 파괴되기도 하였다. 소성당 바로 건너편에는 악짜브리스까야 호텔이 서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카페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또한 옴스크의 유명한 공연장인 오르간 홀이 서 있다. 좀 더 걸어서 오트강의 콤소몰 다리를 건너면 초창기 옴스크가 생겨난 구 시가지를 볼 수 있다.
옴스크에서 가장 멋진 사원이다. 이곳에는 과거 코사크 기명 대를 이끌고 시베리아 원정을 진두 지휘했던 예르마크의 흔적이 남아있다 당시 원정대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서 지어졌으며, 소비에트 시대에 창고와 오르간 음악당으로 쓰이다가 90년대에 다시 정교회에 반환되었다.
울리짜 까를라 리프끄녜흐따로 가면 옴스크의 명물 배관공 스쩨빤을 볼 수 있다. 이 모형은 옴스크의 일반 노동자를 상징하는 소비에트 시절의 조형물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배관공이 길을 건너 바라보는 곳에는 류바라는 여인이 벤치에 앉아 있다. 옴스크에 다시 오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벤치에 다시 앉아봐야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소몰 다리를 건너면 초창기 옴스크가 생겨난 구 시가지를 볼 수 있다.
시내를 거닐다가 만날 수 있는 두 개의 문이다. 타라의 문은 예전에 옴스크 요새의 북문 역할을 하였다. 1959년에 파괴되었다가 1991년에 재건되었다. 토볼스크의 문은 옴스크의 시작과 함께 그 자리를 지켜온 유일한 문이다. 이 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 토볼스크에서 이주해 온 병사와 주민들을 위해 지워진 이름이다. 이 문 근처에는 과거 요새의 모습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