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 빌뉴스 | 면적 | 65,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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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3,692,600명 (빌뉴스의 인구: 576,400명) (2001년) | 시차 | GMT+2 (3월 25일부터 썸머타임실시로 1시간 일찍 시작) |
언어 | 리투아니아어 |
13세기 중엽에 민다우가스가 리투아니아의 여러 부족을 통일시켰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공작 신분으로 통일 리투아니아를 통치했으며 이들 가운데 게디미나스가 14~16세기에 동유럽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국으로 확장시켰다(→ 리투아니아 대공령). 리투아니아를 지배하던 대공작은 1386년 폴란드도 지배하게 되어 이 두 국가는 400년 동안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뒤 리투아니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국가에서 실제적으로 종속적 위치에 있다가 폴란드의 제3차 분할(1795) 때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64~1905년에 있었던 집요한 러시아화 운동에 굴복하기도 했으나 20세기초에 들어와 리투아니아 민족주의 정신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독일이 지배하던 1918년 스스로의 독립을 선포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폴란드, 리투아니아 사이에 수많은 전투가 있은 뒤 소련은 1920년 새로 독립한 리투아니아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1926년에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의회 민주주의를 부분적으로 말살하기 전까지 리투아니아에는 민주적으로 구성된 연립내각이 있었다. 1939년 소련 군대가 강제로 주둔하게 되었으며, 소련군이 점령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1940년에 소련으로 편입되었다. 1941년부터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1944년 소련군이 들어옴으로써 해방을 맞았다. 몇 년 후 리투아니아 경제는 집단화되고 소련 경제에 강제 통합되었다. 그러나 독립국가로 있었던 지난 20년을 기억하는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1980년대 중반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개방화정책을 실시하자 내정에 있어서 소련 정부로부터 더 많은 독립을 요구하면서 민족주의 정신을 되살렸다.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며 1991년 완전독립을 쟁취했다.
발 자취: 빌뉴스 구도시,개미다니스 성,새벽의 문,바실리카 사원,십자가의 언덕,트라카이 국립역사공원,클라이페다,카우나스.성 카시미어 교회(St. Casimir's church) 17세기에 건축된 성 카시미어 교회는 로마의 바로크식 교회를 모방하여 설계한 것으로 빌리우스에서 볼 수 있는 초기 바로크 건물의 본보기라고 합니다.
1501년에 세워진"붉은 벽돌의 환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건물 전체가 붉은 벽돌로만 이루어진 고딕양식의 교회. 33가지의 모양이 다른 벽돌을 구어 쌓았으며 벽면은 부드러운 곡선도 표현 되어있는 진귀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나폴레옹은 이 교회를 수중에 넣고 싶다고 말했으나 그의 병사들은 나폴레옹의 심사를 헤아리지 못하고 러시아에서 패퇴하면서 안타깝게도 교회안의 나무제대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들은 혹독한 추위를 막을 연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빌리우스 시가지의 동쪽 문이었으나 市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빌니우스의 상징인 "여명의 문" 교회는 성문위에 세워져 있으며 여러지역으로부터 순례자들이 찾는 유명한 곳입니다.